이순신 장군은 우리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영웅일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에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정도의 엄청난 활약을 했던 분입니다.
ㅇ 임진왜란에서의 전공
23전 23승의 신화로 많이 알려지기도 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의 전공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 기록에 관하여 2012년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2024년 현재 순천향대, 이순신 연구소 소장)는 “난중일기·선조실록 등 여러 자료를 조사한 결과 이순신 장군의 실제 전적은 45전 40승 5무”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45전의 전투를 치르면서도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이죠.
다음 표는 제장명 교수의 책 '이순신 파워 인맥(2012)'의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 임진왜란 해전 일람표 : 왜란 중 총 49회의 해전이 있었으며, 이순신 장군은 그중 45회의 전투를 지휘했음
ㅇ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3대 해전
1. 한산대첩 (1592년 7월) :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격파한 전투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학이 날개를 펴듯 펼친 진형)을 사용해 일본군을 포위 공격했고, 이 전략을 통해 일본군 함대의 대부분을 전멸시켰습니다. 한산대첩의 승리로 조선은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일본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 명량해전 (1597년 9월),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 명량해전은 억울하게 파직되었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이 극심한 열세에 처한 조선 수군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둔 전투로, 장군의 전략과 지휘력이 빛났습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전선으로 일본의 133여 척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좁은 공간에서 회전이 용이하며, 명량해협(울돌목)의 지형이 좁고 물살이 매우 거칠어서, 10배가 넘는 적을 상대하기에 좋은 장소라는 점을 이용하여, 명량해협(울돌목)의 좁은 해협으로 물살을 타고 한꺼번에 진입한 적 함대를 물살이 바뀌는 시점에 일자진 함대로 돌진하여 조선군은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일본군의 사기를 꺾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흥미진진하고, 극적인 전투는 영화 '명량'으로도 제작되어 소개된 바 있습니다.
3. 노량해전 (1598년 11월),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전투입니다. 이순신, 김완, 이영남, 송희립 등과 명나라 사신인 진린, 등자룡이 함께 하였습니다. 80여 척의 우리 판옥선과 60여 척의 명나라 군함을 이끌고 500척의 일본 군함과 격돌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200여 척의 일본 군함이 침몰되고 1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며 우리의 승전으로 향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여러 장수들이 안타깝게 전사하게 됩니다. 또한 이 전투는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퇴각하는 왜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전쟁을 끝낸 역사적인 전투이기도 합니다.
ㅇ 세계적인 위상의 위대한 전략가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의 진형)과 같은 진형 전술은 현대에도 전술적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의 지휘력은 다양한 국제 군사 아카데미에서 교과서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군의 전술적 허점을 이용해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은 세계 군사사에서도 기적적인 승리로 회자됩니다. 이는 그의 지략과 결단력이 단순한 운이 아닌, 치밀한 전술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전쟁 동안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언제나 군사들과 국민을 보호하는 데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조선을 지켜내겠다는 불굴의 의지는 세계 리더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그는 부하들에게 자기 죽음을 알리지 말고 끝까지 싸울 것을 명령한 후, 전사하면서도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리더십 덕분에 이순신 장군은 단지 군사 전략가를 넘어 민족의 영웅이자 인류가 본받아야 할 리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많은 역사학자와 군사 전문가들은 그를 세계 최고의 해군 전략가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 영국의 해군 장교였던 호레이쇼 넬슨 제독은 이순신 장군과 비교되며, 두 사람 모두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바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전쟁 철학은 세계 여러 군사 아카데미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그가 남긴 해전 기록인 '난중일기'는 당시의 전투 상황과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ㅇ 한국 해군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이순신 장군의 유산
이순신 장군의 전술적 지혜와 리더십은 현대 한국 해군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그 유산은 해군 함대의 전략적 사고와 작전 수행 방식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사고는 오늘날 한국 해군이 국내외 훈련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바닷물의 흐름, 바람의 방향, 적의 배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투를 치렀으며, 이는 현대 해군에서도 매우 중요한 전술적 요소로 여겨집니다. 대표적인 예로 명량해전에서 협소한 해협과 강한 물살을 이용해 일본군을 상대했던 사례는, 오늘날에도 기동성이 중요한 해군 전술의 핵심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학익진과 같은 배치 전술은 현대 해군의 모의 전투에서도 적을 포위하고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자주 활용됩니다.
이러한 전략적 사고는 한국 해군이 국내외 연합 훈련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특히, 세계 최대의 국제 해군 훈련인 림팩(RIMPAC: Rim of the Pacific Exercise)에서 한국 해군은 여러 연합국과 함께 진행한 모의 전투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여 왔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함대가 참여해 해상 전투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이 훈련에서 한국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술을 현대화하여, 전투기와 함정 간의 긴밀한 협력으로 적 함대를 포위하고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습니다.
현대 해군 전투에서 정보전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적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신속하게 준비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해군은 이를 본받아 최첨단 레이더와 정보 수집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적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그에 맞는 전술을 빠르게 수립, 적용한 결과 최근 2023년 환태평양 훈련(RIMPAC)에서 한국 해군은 이러한 정보전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상대 함대에 대한 우위를 확보했고, 훈련의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한국 해군은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훈련을 진행하며, 전쟁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기와 결단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군 장교들은 이순신 장군의 삶과 리더십을 교과서로 삼아, 급변하는 전쟁 환경에서도 냉철한 판단력과 강한 책임감을 갖춘 지휘관으로서 훈련받습니다. 이는 각종 국제 훈련에서 한국 해군이 강력한 동맹군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ㅇ 맺음말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유산은 단순한 역사적 업적을 넘어서, 오늘날 한국 해군이 세계 무대에서 강력한 해상 전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의 전술은 현대의 복잡한 전쟁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적용 가능한 교훈을 제공하며, 해군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남긴 지혜와 불굴의 정신은 한국 해군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삶에도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발전과 세계적 위상을 이끌어가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 자료 ]
- 시민의 소리 : 이순신의 올바른 이해(2) 이순신의 23전 23승은 창작이다
- 중앙일보 : [커버스토리] 3대 해전으로 보는 승리의 이름 이순신